어제는 근로자의 날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근로자의 날의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었다. 그저 은행 가면 놀아서 당황하고, 교직원분들도 노는 그런 날이었는데, 내가 근로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이 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사실 그래서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조현웅군을 꼬시는데 성공해서 삼청동에 피자를 먹으러 갔다. fabbro 대장장이라는 곳인데, 난 전혀 모르는 곳이었지만 조현웅군의 입으로는 부자피자보다 괜찮은 곳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나는 뭐 그게 그거 같은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근로자의 날은 준휴일이라 휴일급으로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평일에 이렇게 놀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참 좋았는데, 원래 사람이 많은 곳에 휴일이 겹치니 인파가 많은 덕에, 대장장이 앞에서 거의 40분을 기다렸다. (1호점은 2명 자리에 앉는데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는 우리를 너른 볕이 드는 1층이 아닌 지하로 보냈다. (남자 둘은 칙칙하다고 아래로 꽂아놓은건가?) 여튼 조현웅군의 학부 연명기는 들을수록 부러웠다. 아직까지 학부생이랑 거리낌없이 미팅을 하고 다닌다는데.. 뭐 물론 난 대학생이라고 미팅을 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여유는 부러웠다. (개인적으로 아직 취업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에는 약간의 신기함이 묻어있지만...) 그렇게 한가롭게 정독도서관도 보고 길을 꼬아서 다니다가 삼청동과 인사동 구경도 했다. 다도 동아리에 붓글씨 동아리도 한 조현웅군이 인사동 찻집에 데려갔는데 괜찮았다. 그리곤 신촌에서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소개팅 애프터를 하러 간다는 조현웅군을 뒤쫓으려다 도서관 출입용 학생증에 버려진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버블티를 마시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조현수와 안성준과 근황에 대해서 30분 넘게 떠들어대며 내 처지만 비하하다가 끝났다. 그렇게 근로자의 날은 예전을 찾으면서 지나갔다.
1. 인사동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듯한 찻집에는 빈 자리의 적막과 아줌마들의 수다가 절반씩 섞여있었다. 갈 때마다 삼청동과 인사동은 전통과 예술의 거리에서 Etude House와 Kiehl's가 양끝을 지키고 있는 거리, 왜인지 모를 사람들의 냄새만 나는 동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힘든 예술가와 예술을 찾는 사람들은 아직 저렴한 동네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고 돈은 그 사람의 흐름을 따라 다닌다.
2. 평일 오후의 학교 앞 떡볶이집은 정말 오랜만에 가보았다. 사실 중/고등학교때도 학교 앞 떡볶이집은 없는 탓에 그런 곳에 딱히 가본 적이 없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천원짜리 컵떡볶이를 먹고 앞을 보니 학교 담벼락 안에서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있었다. (물론 난 학교보안관의 통제를 걱정해서 학교에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그네를 타고 땅바닥에 그림 그려가면서 놀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테니스공 하나로도 충분히 잘 놀곤 했는데 요즘에는 굳이 무언가를 하려면 부수적으로 무언가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 그 시절에는 2만원이면 한달 용돈이었지만 지금 2만원은 그저 한끼 밥값이다. 어쩌면 지금 나는 행복을 돈으로 사려고 시도하는 철없는 어른의 탈은 쓴 아이가 아닌가 싶다. 아직 속은 Teen Pop이 익숙하고, 어린 감성이 충분한 것 같은데, 나는 아직 10년전에 나온 자우림 노래와 체리필터의 노래를 듣고, 5년 전에 나온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그리고 학부때부터 쓰던 블로그에 익숙한데, 나를 둘러싸는 겉의 환경은 이런 나의 태도를 어리숙하고 어린 치기로 바라보는 것 같아 슬프다. 세상은 점점 스마트해지고, 더 빨라지고 변화하는데, 무엇이 변해가는지 나는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잘 모르겠다. 회사에 출근하고 보니 낮에 편안히 북카페에 앉아, 도서관 등나무 아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중앙도서관에 앉아 큰소리로 웃으면서 오손도손 조모임을 하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뒤늦게 아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더라도 이제 더 이상 다가갈 용기도, 내가 다가갈 수도 없다. 마치 그 광경을 관객으로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그런 슬픔이 다가왔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런 것들이 시간이 약간만 지나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점심을 먹고 식당을 나선 뒤에도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아이들의 모습은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휴일에 젊음을 담으러, 찾아간 도서관에서 나는 괜한 거리감과 우울함만 가득 담아서 나왔다. 어쩌면 섬이라고 싫어했던 고등학교의 면학실, 교실, 그리고 식당으로 뛰어가던 그 움직임. 대전 시골이라고 탈출할 궁리만 했던 학부시절의 매점에서의 수다와 열람실마다 자리를 맡아놓고 공부하러 전전하던 도서관에서 느낀 그 미묘한 감정들은 그 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정말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즐기고 있는 그들이 그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나 대신 충분히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1. 이런 나는 지금 denial, anger, bargaining, depression, and acceptance 중에 어디에 있을까?
3. 연대 중앙도서관 2층에 가보니 연세선정도서 200선이 소파를 한바퀴 두르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느낀 우울함을 겨우 달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읽은 책이 보이질 않았다. 난 대체 뭘 하고 살았을까? 그러고보니 난 정말 아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어떻게든 이 무식함이 티나지 않게 잘 채워넣어야할텐데...
4. 소개할 뮤직비디오는 내가 5년 전에 알게 된 Taylor swift의 이번 앨범 Red에 수록된 22. 뮤직비디오에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뚝뚝 묻어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