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수학 경시~
요즘 밤에 곰곰히 생각해보는 일들.. (Mc빵수와 조광의 역할이 매우 컸다.)
아무런 득을 못 볼 것 같던 고등학교 수학 경시에서 과연 나는 득을 볼 수 있었는가?
사실 중학교 이후로 인천에서 수학경시를 준비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시 경시 직후까지는 서울 선릉역, 대치동 근처에서 주말마다 학원을 다니곤 했다. 처음 2~3번은 경기도 과천으로 다녔었던 것 같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꽤 거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은 나를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예를 들어 KPhO 금상 수상자라거나, KSA 1회 수석 입학생, 그리고 글맥학원의 '오창원 선생님'이 누누히 얘기했던 '오나영'양,대원외고 중국어과 Top등등)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약 3달간을 놀았고, 끝내는 모두들 알고있다고 예상되는 '함춘학원'에 끌려가듯 시험을 보러갔지만 나는 '최창호 선생님'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의 상의를 거쳐 2주일 후에 KnC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수학 수업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우리 엄마와세련, 찬배 어머님과의 공조로 셋은 함께 부천 서울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이 학원은부천월마트 앞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몇 달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는 다시 위치를 '상동 글맥학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9월에 갔던 학원을 1월에 다시 바꾼 이유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글맥학원에 다니게 된 일은 나에게 있어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학원에 의해 나의 수학 경시에 대한 모든 것이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릉, 대치동에서 내가 받은 가장 큰 훈련은 '풀이를 쓰는 법' 자체였다. 이 학원에 의해 나의 끄적끄적 풀이는 점점 길어지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리고 글맥학원에서 '문제를 푸는 법'을 익히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 두 학원 중에 하나만 갖추어졌더라면 나의 과학고 생활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찌했든 정말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오창원 선생님'덕분에 나는 팔자에는 존재하지 않던 '시 경시 금상'으로 생각보다 쉽게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남들은 열심히 경시 끝나고 놀았다고 하지만 (물론 나는 계속 화학 경시를 준비하던 병민이와 종원이를 보았지만) 나는 계속 입학하기 직전인 2월까지 글맥학원에서 과학 공부를 강제로 해야했다. 특히 11월 3일 특별 전형 입시 결과 발표 직전까지 열심히 일반 전형 대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특히 '하상원 선생님'이 가르쳤던 화학, 지구과학Ⅱ 노트 필기는 고등학교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 이끌려 다시 테크노마트 근처에 있던 학원에 고등학교 수학경시를 준비하기 위해 가게 되었다. 그 학원은 3번만 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더 이상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인천과고도 1주일에 1번씩만 나왔다면 나는 그 학원을 계속 다녔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C군의 어머님의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수학하는 사람'에서 수학 경시를 준비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나는 주말에는 그냥 쉬고 싶다는 말로 설득을 시도하는 엄마의 마음을 돌려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니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아니 나았다!) 사실 인천에서 밤 늦게 온다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혹시 서울에 있는 학원이라면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혼자 수학경시를 준비해 보겠다고 열심히 정수론, 조합수학, 기하, KMO 대비용 '빨간 책'을 샀지만 언제나 경시 1주일 전부터만 펴보는 최악의 소비를 보여주고 말았고 오히려 조합수학 책은 최웅비에게 득템당하는 결과를 나았다. (이 책은 최준원군도 눈독을 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찌했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나는 경시보다는 내신에 충실한 학생이 되어있었다. 나는 이제 수학 경시로 인해서 득을 보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접었다. (솔직히 아주 약간의 이변을 바라긴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정말 의외의 일이 두 번 벌어졌다. KMO 1차 시험, 그리고 시 경시대회 대표 선발을 위한 학교 대회!
특히 256을 더하지 못해 틀려서 71점으로 KMO 여름학교를 가지 못했던 점, 더 풀려다가 점심을 위해 포기했던 한 문제로 인해 발생했던 시 수학 경시대회 학교 대표 선발 7등 사건은 언제나 나에게 언제나 되물음을 주곤 했다. (물론 이것보다는 지구과학 대표가 더 의외였다.) 과연 내가 고등학교 때 수학경시를 준비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종종 상상을 해보곤 한다.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결과가 탄생하곤 한다.
<
'사용중지 >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그리고 몇 가지 과목;; (4) | 2006.04.25 |
---|---|
KAIST와 피아노 (4) | 2006.04.21 |
'하루에 1.5끼만 먹기'의 원칙 (0) | 2006.04.14 |
여름 방학의 계획 (0) | 2006.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