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애초에 마지막 지면 기획에 맞추어 나 혼자 마지막에 간직하기 위해 작성된 기사이다. 마지막에 지면에 실릴 가능성이 생겨서 마지막 부분의 방향이 달라졌지만, 쓰다 보니 만약 지면을 통해 공개되면 내가 살리고 싶은 부분이 많이 죽을 것이 불보듯 뻔하게 예상되는 관계로 실릴 것을 가정해서 기사를 쓰고 혼자 간직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덕분에 기사 내용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진짜 캠퍼스헤럴드 5기 대학생기자의 활동이 모두 종료되면 짧게 글을 올려볼 생각이다. 그런데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별로 한 건 없는데 소감만 길다.
오늘도 난 잠에서 깨어 북쪽을 바라보는 창을 통해 눈부신 태양을 바라본다. 요즘 들어 아침 햇살이라는 중요한 존재를 다시 느끼고 있다. 아침잠과 게으름의 오묘한 조화로 인해 잠시 잊고 있던 햇살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시간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황홀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 시간표에서 9시 수업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더군다나 방학이 지나고 기자라는 타이틀로 부모님을 설득해 휴학생의 신분이 된 나에게 나태함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이 도착한 덕분에 나는 아침햇살보다는 새벽 5시쯤에 볼 수 있는 해가 떠오르는 파란 하늘이 익숙해져갔다. 그렇게 파란 하늘을 보고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는 은행 셔터가 내려갈 즈음이 되어서야 다시 눈을 뜨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잠으로 저 깊은 햇빛을 가릴 수 없다. 더 이상 침대 속에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나 밝으니까. 머리 위에서 나를 향해 내리꽂는 듯한 저 햇빛, 그리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온통 처음 보는 푸르른 나무로 뒤덮인 세상.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풍경이다. 난 지금 재택근무 중이다. 5기 대학생기자라는 타이틀에서 강제 추방되기 직전인 나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며 기사를 쓰지 않는다. 발품을 팔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와 자판과 함께 그냥 내 생각을 적어내려간다. 사실 발품을 판다고, 다리를 좀 더 움직인다고 기사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난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별 소용이 없다. 난 이제 한국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6시간을 넘게 날아야 도착할 수 있는 이 곳, 내가 지금 키보드와 씨름하고 있는 이 곳은 북위 1도, 싱가포르이다. 만일 싱가포르의 문화 행사에 대한 기사를 쓴다면 나는 지금쯤 싱가포르 시내에서 영어로 취재를 해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기사는 없다. 한국의 카미는 같은 회사의 코리아헤럴드와 다르게 한국 위주의 기사를 한글로 작성하는 매체이니까. 이제 이 곳에 도착한 지도 4주가 다 되어간다. 사실 그 덕택에 나는 이번 지면에 카미 문화팀이 어떤 기사를 쓰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들 출국을 즈음해서 저번 지면을 펑크내고 비행기를 탄 나에게 지면을 할애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펑크를 인터뷰어의 섭외 문제로 돌리고 있다.) 카페에도 기획 회의 결과가 올라오지 않았던 탓에 난 지면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알 지 못한 채, 다른 기자들에게 물어물어 마지막 주제가 색깔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유로운 글쓰기. 끌리는 지면이었지만 나에게 할애된 지면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5기 기자로서의 마지막호을 흘려보낼 뻔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는 지나간 줄 알았던 마지막 버스가 도착했다. 8월의 마지막이 된 지금, 나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지면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이 곳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더위였다. 한국에서 열대야의 기준은 한밤중 최저 온도 섭씨 25도. 만일 그 기준이라면 난 싱가포르에 도착한 뒤로 매일매일을 열대야의 늪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은가. 이제는 클럽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만 아니라면 더워도, 후덥지근해도 작은 선풍기에 의지해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도리어 지금은 에어콘 부대가 점령한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청바지와 긴 외투 한 벌을 이용해 추위와의 싸움을 준비해야할 처지에 있다. 그러나 4주가 지난 지금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입에 들어가는 음식 문제다. 기름진 현지 음식의 대습격을 당해내지 못한 나는 그 많은 학교 안 푸드 코트에서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찾지 못했다. 더군다나 믿고 시켰던 한국 음식이라고 만든 음식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나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푸드 코트에서 한국음식을 발견해 먹게된 그럴듯한 김치찌개에 감동한 나는 찌개그릇의 바닥까지 들어내곤 한다. 베트남, 인도 음식점에서 밥을 찾으면 뭉쳐지지 않는 쌀에 슬픔을 느끼는 나는 매일 한국에서 먹던 하얀 쌀밥을 상상하곤 한다. 아니, 나는 하얀 쌀밥을 떠올리며 아마도 싱가포르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을, 아니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한국만의 독특한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 한 공기, 문뜩sticky rice가 떠오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