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rete/08 Singapore 2008. 12. 11. 01:18
global과 local의 차이
처음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Skytrain도 타지 않고(라고 말하지만 사실 몰랐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기 위해 공항을 걸어다녔다. 그 때 가장 먼저 만난 것이 후덥지근한 더위였다. 그 때 나는, '그래 싱가포르니까'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 때 가장 먼저 본 것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이었다. 그 때도 나는, '그래. 여긴 싱가포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였다. 더위도, 시간표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의 싱가포르 생활은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굳이 offensive하게 생각할 만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만약에 환율이 2년 전처럼 안정적이었다면 아마 싱가포르에 계속 살고 싶어했을 지도 모르겠다. 여튼 내 싱가포르 생활은 각종 여행과 더불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교환학생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사실 애초에 교환학생의 목적은 도피에 있었다. 서울로 달아나고, 휴학을 한 뒤에, 이제 KAIST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마지노선 앞에서 택한 선택이 교환학생이었다. 원래 교환학생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단지 대학교 1학년 때 영어 수업 면제를 위해 시작한 토플 공부가 그제서야 빛을 발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피라는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의 목표는 열공을 통한 전과목 A+였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놀라움을 자아낸다. 어찌했든 도착한 직후부터, 나는 놀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늦잠 덕분에 시험을 치루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경험했는데, 아마도 이건 그냥 교환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성적표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 덕분에 정말로 듣기 싫은 선형대수학개론 수업은 다시 들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아무래도 처음과는 다르게 '바람직한' 결말로 교환학생은 그렇게 끝을 맞았다.
여튼 나는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global extrema를 찾지 않았다. 이는 사실 앞에 말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데 나는 작년에 배웠던 decision theory의 satisfice를 몸소 실천했다. 사실 global extrema를 추구했다면 교환학생 생활이 더 즐거웠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global extrema에 펼쳐져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seeking cost가 많이 드는 그런 일들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행동이 stupid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존재하는 이 자리에서의 local extrema를 찾았다. 사실 4개월간 global extrema를 찾을 수 있는 싱가포르였다면 싱가포르에 사는 모두들 엄청난 만족과 함께 살았겠지만 내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exchange' student였지만 exchange 'student'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이 순간 즐거웠다는 사실에 있다. 굳이 변화를 추구할 이유도, 생각도 가지지 않았다. 그냥 이 자리가 나에게는 최선이었고, 내 global extrema였을 것이라 나는 추측한다. (왠지 여기에 귀찮았다고 쓰긴 싫다.)
처음 학교에 도착해 뻘뻘 땀을 흘리며 커다란 트렁크 2개를 끌고 걷던 때가 엊그제였고, Sentosa 바닷가에서 놀던 때가 엊그제였다. 그리고 Redang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쳐다보던 9월은 이제 저 멀리로 날아갔고, 이제 12월이 되어 그 때를 생각하면서 Ha Long Bay에 둥둥 떠서 이런 글을 남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학기 말 여행의 전체를 소비했다. 입버릇처럼 여행 중에 싱가포르를 그리워한다던 Tiffany한테는 'Don't miss singapore too much.'라고 말하면서도 내 행동은 결국 말과 반대로 가고 있다. 사실 내가 싱가포르 교환학생 생활이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학기 종료 1달도 전에 예상했던 일이다. 단지 이제 학기가 끝나고 이 모든 게 현실로 닥쳐온 것뿐이다.
내가 수다를 떨고, 공부를 하고, 게임을 했던 PGP Residence A/C canteen도, 수업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던 Central Library Computer Cluster, 학기 초에 수요일을 불태웠던 클럽도 이제는 저 멀리로 떠나가 버렸다. 멋진 자연이 함께했던 bintan island와 redang island도, 길도 모른 채 돌아다니던 여행지들도 앞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다가갈 수 있을 게다. (물론 지금도 지도 한 장을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 전체를 헤매고 있다.) 어쩌면 싱가포르에서 지냈던 모든 시간이, 수업 지각이 확정되어 발을 동동 구르며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까지 기억날 지도 모르겠다. (역시 쓸데 없는 걸 잘 잊지 못하는 기억력이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같이 했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들도 그리울 게다. 그리고, 아마 이제 헤어져서 다시는 못 만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돌아간다고 해도, 모두들 Singapore를, NUS를, PGP Residence를 떠난 상태에서 나 혼자 다시 그 곳을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이 상황 앞에서 모든 것을 멈추려고 한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염없이 나중을 기약해야겠지만 good-bye보다는 see you later로 끝맺으려 한다. 혹여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게 된다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쏠쏠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재미를 기약하는 쏠쏠한 재미의 여지를 남겨두며 언제 resume될 지 모르는 pause status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려한다.
처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말랑말랑하고 간결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매듭을 짓고나니 처음 생각과는 굉장히 다른 길로 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혹시 2008년의 다른 절반동안 혹여 나 때문에 힘들었거나, 나 때문에 화나고 짜증나고, 나에 대해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듬뿍 담긴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앞으로 많이 그립고, 많이 생각날 교환학생에 대한 길고 긴 글을 마치려 한다.
어쨌든 이 글을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혹시 그리울 기억을 떠나보내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야겠다.
교환학생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사실 애초에 교환학생의 목적은 도피에 있었다. 서울로 달아나고, 휴학을 한 뒤에, 이제 KAIST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마지노선 앞에서 택한 선택이 교환학생이었다. 원래 교환학생에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단지 대학교 1학년 때 영어 수업 면제를 위해 시작한 토플 공부가 그제서야 빛을 발했던 것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도피라는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싱가포르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의 목표는 열공을 통한 전과목 A+였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놀라움을 자아낸다. 어찌했든 도착한 직후부터, 나는 놀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늦잠 덕분에 시험을 치루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경험했는데, 아마도 이건 그냥 교환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성적표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 덕분에 정말로 듣기 싫은 선형대수학개론 수업은 다시 들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아무래도 처음과는 다르게 '바람직한' 결말로 교환학생은 그렇게 끝을 맞았다.
여튼 나는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global extrema를 찾지 않았다. 이는 사실 앞에 말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데 나는 작년에 배웠던 decision theory의 satisfice를 몸소 실천했다. 사실 global extrema를 추구했다면 교환학생 생활이 더 즐거웠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global extrema에 펼쳐져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seeking cost가 많이 드는 그런 일들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행동이 stupid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존재하는 이 자리에서의 local extrema를 찾았다. 사실 4개월간 global extrema를 찾을 수 있는 싱가포르였다면 싱가포르에 사는 모두들 엄청난 만족과 함께 살았겠지만 내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exchange' student였지만 exchange 'student'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이 순간 즐거웠다는 사실에 있다. 굳이 변화를 추구할 이유도, 생각도 가지지 않았다. 그냥 이 자리가 나에게는 최선이었고, 내 global extrema였을 것이라 나는 추측한다. (왠지 여기에 귀찮았다고 쓰긴 싫다.)
처음 학교에 도착해 뻘뻘 땀을 흘리며 커다란 트렁크 2개를 끌고 걷던 때가 엊그제였고, Sentosa 바닷가에서 놀던 때가 엊그제였다. 그리고 Redang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쳐다보던 9월은 이제 저 멀리로 날아갔고, 이제 12월이 되어 그 때를 생각하면서 Ha Long Bay에 둥둥 떠서 이런 글을 남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학기 말 여행의 전체를 소비했다. 입버릇처럼 여행 중에 싱가포르를 그리워한다던 Tiffany한테는 'Don't miss singapore too much.'라고 말하면서도 내 행동은 결국 말과 반대로 가고 있다. 사실 내가 싱가포르 교환학생 생활이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학기 종료 1달도 전에 예상했던 일이다. 단지 이제 학기가 끝나고 이 모든 게 현실로 닥쳐온 것뿐이다.
내가 수다를 떨고, 공부를 하고, 게임을 했던 PGP Residence A/C canteen도, 수업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던 Central Library Computer Cluster, 학기 초에 수요일을 불태웠던 클럽도 이제는 저 멀리로 떠나가 버렸다. 멋진 자연이 함께했던 bintan island와 redang island도, 길도 모른 채 돌아다니던 여행지들도 앞으로 한참이 지나서야 다가갈 수 있을 게다. (물론 지금도 지도 한 장을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 전체를 헤매고 있다.) 어쩌면 싱가포르에서 지냈던 모든 시간이, 수업 지각이 확정되어 발을 동동 구르며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까지 기억날 지도 모르겠다. (역시 쓸데 없는 걸 잘 잊지 못하는 기억력이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같이 했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들도 그리울 게다. 그리고, 아마 이제 헤어져서 다시는 못 만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돌아간다고 해도, 모두들 Singapore를, NUS를, PGP Residence를 떠난 상태에서 나 혼자 다시 그 곳을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이 상황 앞에서 모든 것을 멈추려고 한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염없이 나중을 기약해야겠지만 good-bye보다는 see you later로 끝맺으려 한다. 혹여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게 된다면 반가운 인사와 함께 쏠쏠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재미를 기약하는 쏠쏠한 재미의 여지를 남겨두며 언제 resume될 지 모르는 pause status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려한다.
처음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말랑말랑하고 간결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매듭을 짓고나니 처음 생각과는 굉장히 다른 길로 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혹시 2008년의 다른 절반동안 혹여 나 때문에 힘들었거나, 나 때문에 화나고 짜증나고, 나에 대해 실망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듬뿍 담긴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앞으로 많이 그립고, 많이 생각날 교환학생에 대한 길고 긴 글을 마치려 한다.
어쨌든 이 글을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혹시 그리울 기억을 떠나보내고, 아름다운 추억만 남겨야겠다.
- Properties
Singer : Hey
Title : Piece of My Wish
Released Year : 2003
Stage : Piece of My Wish
Singer : Hey
Title : Piece of My Wish
Released Year : 2003
Stage : Piece of My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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