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日: 맑은 하늘, 정원에서의 눈구경.
여행 4일째, 전날 밤에 나는 나름 일찍(?) 방에 돌아와서 잘 준비를 했다. 원래 목표 상으로는 오동도에서의 일출을 보려고 했기 때문인데, 요즘 일출 시간이 7시 30분 근처까지 늦춰졌기 때문에 나름 승산이 있다고 봤다. 그러나 알람을 맞추지 않고 그냥 잤던 덕분에 일어나니까 7시 20분. 하하하. 그냥 더 잤다. 정말 충분히 충분히 잠을 자고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슬슬 씻고 일어나서 오동도만 보고 여수를 떠나기로 했다. 사실 전날에 일찍 일어났으면 어떻게든 향일암을 넣어보려고 했는데, 뭐 일어나고 보니 어차피 불가능한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방파제를 따라 가면 저 멀리 오동도가 보이는데, 나름 오동도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물론 그런 자연만 있는 국립공원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오동도에 가는 길, 바람이 거칠어진다. 눈도 살짝 왔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눈은 조금 오다가 그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어제 온다던 비가 안 왔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내가 날씨 운이 좋았다고 잘못 생각한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거친 바람을 뚫고 와서 방파제가 끝나자 마자 오르는 계단이 있길래 얼른 숲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로 꽉 차있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데, 은근히 가파르다.
이정표를 보니 용굴이 있단다. 조선시대에 여수시의 하천과 연결되어 용이 살았었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전설의 끝은 어느 날 보니 요로코롬 돌이 가득차서 용이 다니는 길이 막혀버렸다는 슬픈 전설. 그래서 이름이 용굴이다. Dragon Cave.
그런데 덕분에 진입로도 나무 계단으로 잘 되어있고, 바다를 보기에 아주 탁 트여있는 좋은 곳이다. 그런데 해가 먹구름에 가려져있다.
그리고 쭉 걸어서 오동도 등대에 올라가봤는데, (여기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여기서 바다를 내려보는 것보다,
그냥 밖으로 나와서 해돋이 전망대에서 보는 것이 더 낫다. 시선을 가로막던 유리 한겹을 벗은 느낌. 이제와서 보니 여기서 일출을 봤다면 진짜 멋졌겠구나 싶지만, 이미 3시간이나 늦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사실 여기서 여수시티투어 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여학생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웃고다니는데, 뭔가 그런 추억을 이런 곳에서 쌓아서 공유할 수 있다는게 부러웠다. 아, 사실 웃는 모습 자체가 예뻐서 부러웠다.
나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이라 자연이 잘 보존되어있고, 자연학습장이나 동백나무들이 유명하다지만 혼자서 자연학습장에 앉거나 동백꽃을 구경하는 것도 참 웃기다. 갯바위나 낚시터도 휙 돌아보고 겨울이라 가동하지 않는 음악분수를 뒤로 하며 여수, 그리고 오동도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여수에 오면 그때는 꼭 향일암 일출도 보고 저 케이블카도 타봐야겠다. 아, 근데 동백열차 간격은 참 아리송해서 방파제 다 걸어갈즈음 되어서야 저기에 세워져있던 동백열차가 육지쪽 정거장에 도착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박람회 참가국 국기들을 바라보며, 종료. 그리곤 다시 게스트하우스에 들려서 트렁크를 질질 끌고 여수역으로 향했다. 여수역에서 배가 고프니 빵을 사먹으려는데, 호잇호잇. 가방을 사물함에 넣으려고 돈을 바꾸던 어제도 만난 그 여자애 둘을 또 만났다. 내가 꼬막정식을 엄청 아쉬워했다고 했더니, 벌써 자기들은 일출을 보러 5시 반에 일어나서 순천만까지 갔다가 (입장이 안되서 그 앞에서) 일출을 다 보고 드라마세트장까지 보고 이미 여수까지 왔던 거란다. (가방을 보니 가방 사이즈가 무지막지하다.) 그래서 여수 야경투어를 알려주고, 다음에 내가 만나게 되면 그 때는 꼭 밥을 사겠다고 말..했는데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 여튼 그 뒤로 순천역에 총총 도착한 나는 순천터미널에 짐을 잘 가져다두고 순천만 정원으로 향했다. 순천에서는 딱 순천만공원과 순천만정원 2개만 보기로 마음먹었다. 뭐 드라마세트장은 딱히 신선하지 않았고, 낙안읍성은 그냥 민속촌에 한번 더 가도 될 것 같았다.
순천만 정원까지는 버스를 타고 무사히 도착했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바람만 불었지 눈은 오지 않았다. 물론 바람은 세찼다.
그런데, 정원이라는데 뭔가 휑하다. 주위를 보니 정말 거짓말 없이 봄맞이를 위해서 정원에서 일하시는 분이 정원에 있는 사람 중에 절반이 넘는다.
들어와서 일단 시계방향으로 둘러보려고 했더니, 짜잔! 이게 장미정원? 이건 일본 겨울여행에서 보았던 장미정원과 유사한데... (장미 없는 장미정원) 예상대로 겨울에 정원 나들이는 무리였다. 봄의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다녀야하는 아름다운 상상의 놀이터가 겨울의 순천만정원이다.
게다가 겨울이라 저 철로만든 다리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 통제되어있다. (물론 사람이 막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가면 들어갈 수는 있겠다만.)
바닥에 그려진 고철로 그려진 곤충들도 보이고, (덕분에 겨울에도 곤충이 보인다 하하하)
꽃보다는 잔디와 식물이 주가 되는 정원에서는 꽤나 예쁜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라고 해도 춥지 않는 날 야외에서 3~4시간 정도 걸으면서 한적하게 구경하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눈이 오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근원. 처음에는 눈이 안 쌓일 줄 알았는데 이 눈은 쌓이는 눈이었다. 소복소복 정원에 눈이 쌓이니까 일단 분위기는 더 산다.
프랑스정원에 눈이 쌓이고 구름낀 하늘 때문에 약간 어두워지니, 크리스마스 분위기 숑숑 난다. 그러나 정작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했다는 이 곳의 궁전건물은 엔젤리너스커피 매장이다.
운치있는 중국 정원, 이 각도 밖으로는 많은 아주머니 할머니 분들이 정원에 비료를 뿌리고 계셨다. 내년 봄 장사는 미리미리 지금부터 준비합니다.
그러다가 프랑스정원을 나서보니 막 언덕이 보이길래 넘어가려다가 언덕에 올라갔다. 올라가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저렇게 위에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하시고선 정작 저기를 못 가게 통제하시다니. 덕분에 넓은 정원이 더 한적해보인다. (이건 좋은건가?)
갑자기 눈이 살짝 그쳐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여기는 독일 정원이라는데, 내가 본 독일 정원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약간 벙커 스타일을 보니 츠빙거 궁전 정원 느낌은 난다만, 일단 겨울이라 꽃은 거의 없고 지푸라기가 많다. 참고로 사진 안 찍힌 왼쪽은 거의 지푸라기만 있었다.
정말로 내가 바란 정원의 느낌은 이런 것이었는데 하하하. 하늘이 개이는 몇몇 순간에나 볼 수 있다.
진짜 날씨가 오락가락하다보니 정말 순간순간의 빛이 소중하고,
실내정원은 당연히 더 소중하다. 실내정원에 들어오니 이 따스한 느낌 덕분에 김이 내린 렌즈마저 소중하다.
실내정원은 열대 식물 파트와
한국식 정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에 소중한 건
그냥 따스한 공기가 제일 소중하다. 물론 저 모형 두루미가 있는 연못도 소중하지만, 그리고는 유럽 쪽 정원이 있대서 쭉 둘러봤지만, 앙상한 가지만 남은 정원은 아름다움과는 먼 정원들이었다. 그래서 날씨도 꾸리꾸리하고 하늘에서 간간히 내리는 것도 있으니 다리 건너 반대편 한국 정원을 보고 순천만 생태공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길에 있던, 풍차가 있는 이 곳은 네덜란드 정원. 물론 튤립은 없고, 단지 돌지 않는 풍차와 눈이 나를 반겨준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서 입장 1시간 반만에 다리에 도착, 눈은 내리지만 그래도 걸어다닐만한 상태였다.
다리의 이름은 꿈의 다리, 어린아이들의 수많은 꿈을 간직한 다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현실에서는 엄청난 눈이 내렸다. 어머머 올해 이렇게 많이 내리는 눈을 맞아본 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우산을 쓸 수도 없으니 난 그저 맞으면서 다니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눈이 장난이 아니고,
그 눈이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한다. 정말 눈이 모자에도 팔에도 쌓이는데, 덕분에 카메라를 외투 안에 넣고 다녀야했다. 아마 그렇지 않고는 카메라에 내리는 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눈사람이 되어서 서쪽 정원을 걸어다녔다. 원래 눈이 조금 올 때까지만 해도 아 호수 주변으로 한바퀴 돌고 구경한 뒤에 한국정원에 가면 되겠다.라고 했는데 나의 괜한 생각이었다. 그냥 바로 질러가야했다. (물론 거리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정말 눈사람이 되어가며 한국정원을 봤는데, 그래도 나름 꾸며놓은 건 예쁘다. 소나무에 눈이 내리니까 예쁘긴 하네.
뒤쪽에는 나름 별채도 있어서 한국정원의 구색에 맞다. 뒤쪽에는 미니 등산코스도 있다만, 지금 눈이 이렇게 내리는데 어딜 갈만한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는 스카이큐브를 타러 왔다. 순천만 스카이큐브는 순천만 정원과 순천만 생태공원을 이어주는 신교통수단이라는데, 바이모달 트램 시스템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하늘을 달리는 모노레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대 승차인원 8명으로 4.7km를 달리는데, 참고로 이용료는 왕복 5000원이란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들었던 순천 정보를 모으고 모아서 탄 건데, 정원에서 볼 때 완전 쌩쌩 달리는게 사실 신기해서 원래는 버스를 타려다가 이 아이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러나, 배차간격이 따로 없는 이 스카이큐브를 타는데 30분을 기다려야했다. 분명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방금 다들 승강장을 떠난 것 같은데, 내가 승차할 때는 한 2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순천에 눈이 온 관계로 올해 운행을 시작한 이 스카이큐브는 딱히 눈에 시험당한 적이 없는지, 레일이 얼었을 지 모른다며 열심히 시스템 체크도 하고 작업도 해야한다니 난 그저 대기할 수 밖에.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탑승에는 성공했지만 열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직원분들이 함께 탑승해서 시스템 상 노면 상태에 따라서 멈추면서 이동한다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덕분에
순천만이 원래는 철새도래지로 굉장히 유명한 곳이었고, 이로부터 생태공원이 시작됐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새가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지금은 눈이 아까 와서 다 산 속으로 숨어서 이정도란다.
그렇게 순천문학관에 도착했다. 순천만의 보호를 위해서 순천만 생태공원보다 한참 앞에 정거장이 있고, 원래는 버스가 있었다고 하는데, 겨울에는 그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고 하니 난 영락없이 이 눈폭풍을 맞으면서 공원까지 걸어가야하는 아름다운 상황에 놓였다. 참고로 내리면서 노면 결빙으로 돌아가는 스카이큐브 운행이 중지될 수도 있다면서, 5시 15분까지 운행하지만 미리 승강장에 와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 일몰은 5시 20분이라는데요?) 왠지 불안하다 이거.
그리고 내리고 드러난 순천만의 날씨는 눈보라. 눈만 내리면 다행인데 바다바람은 어찌나 강하게 불어주시는지 난 잰걸음으로 후다닥 걸어갔다. 원래는 순천문학관도 같이 보면 좋다고 트램 안에서 들었는데, 지금 날씨가 여유롭게 문학에 대해서 생각할만한 상황이 못된다.
바람도 앞으로 불어주셔서 뒤로 등지고 걸어갔다.
그래. 이 길은 버스가 다녀야하는 길이었어. 덕분에 눈 쌓인 갈대밭을 본다.
그래도 다행인건 공원에 갔더니 눈은 안 내린다.
도착해서 보니 진짜 눈이 흩뿌려진 미끄러운 길 밖으로 드넓은 갈대밭이 장관이다. 나에게 갈대밭은 하늘공원이 전부였는데. 참고로 공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목표는 저 앞의 용산이었다. 용산의 전망대에 가면 일몰이 정말 에쁘다던데, (순천만의 일몰 때문에 순천은 꼭 다시 와볼만 하다고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야기도 들었다.) 스카이큐브가 30분이 넘게 날 기다리게한 덕분에 저 산은 올라갈 수 없는 산이 되었다. 공원 앞에서 전망대까지 편도로 40분이 걸린다는데, 내가 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4시 20분이 넘는다. (스카이큐브에서 인터스텔라를 탔는지 한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그래도 철새들과 갈대밭을 보니 손이 좀 시려워도 괜찮다.
순천만의 용산전망대 일몰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그냥 갈대밭을 거닐어보기로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갈대밭은, 순천만 정원이 순천만 투어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게 크나큰 발견이었다.
한바퀴를 쓱 돌고 순천만 공원을 빠져나오는 내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구름이 방금 물러간 순천은 지금 일몰이 제대로 보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 아마 그냥 이렇게 하늘은 까매졌을게다.
이렇게 순천만 공원 구경을 마치곤 난 스카이큐브를 카러 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그냥 버스를 탔다. 왠지 결빙 문제가 딱히 해결되지 않았을 것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 승강장이 가까우면 가볼만 하지만 해가 지고 있는데 1km를 걸어서 이동해야하는 관계로 그냥 시험에 들기보다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정했다. 참고로 시골(!)의 특성 상 버스가 30분 간격이라서 나와서 한참 기다렸다. 그나마 다행인건 공원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오래걸릴 줄 알았는데 25분이면 도착한다길래 타면서 놀랐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내 관념 상으로 잡혀있던 서울에서 이런 자연을 보기 위해서 가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난 버스를 타고 소매물도를 볼 내일을 생각하며 통영에 도착했다. 하루종일 추운 날씨에 씨름했던 지라 스물스물 잠에 빠졌지만 종착지에서 내리니까 그냥 편하게 잤다.
도착해서 국밥 한그릇을 먹고 통영항 여객터미널 코 앞에 있는 통영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다음날 7시에 배를 타고 움직이려니 미리 그 앞에 가는 게 나아보였기 때문인데, 가보니 춥다.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일단 여자 남자 샤워실이 따로 없어서 (물론 그 날 여자 손님이 없었지만) 당황했다. 게다가 복도는 난방이 안되고, 샤워실도 춥다. 전체적으로 난방이 잘 안된다. 그러나 묵었던 손님들이 찍어놓은 손바닥과 주인분의 여행경험 이야기를 들으면서 회를 먹으니까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싶다. 같이 앉아서 회를 먹는 사람들 중에는 일주일 뒤에 군대에 간다는 설곽출신 대학생이 있었는데, 서울대가 엄청 대화주제에 올랐고, 난 조용히 있었다. (일단 석사병특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뭐하는 학생들인가 했다.) 뭐 여튼 회와 소주와 과자와 함께한 덕분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마무리하면서 그 아이들이 소매물도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주인분이 내일 배가 안 뜰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내려온 그 아이들은 거의 뭐 소매물도 이름만 적어온 상태였다. 나도 소매물도에 가겠다며 7시 배를 탈 것이라고 했더니 같이 가자길래 술을 열심히 마신 아이들을 6시에 깨우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동행이 생겼다.
'Discrete > 14 Railro' 카테고리의 다른 글
6日: 총체적 난맥상. (0) | 2015.04.06 |
---|---|
5日: 여유의 끝, 휘몰아치는 혼돈. (1) | 2015.01.05 |
3日: 여행의 오차. (0) | 2014.12.28 |
2日: 진짜 여행의 시작. (0) | 2014.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