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난 분명 스페인어권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오히려 영어에 자신감이 늘어서 왔다. 스페인어를 쓸 수가 없으니 다른 외국인들과 만나면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실제로 이런 경우도 있었다. Habana에서 Trinidad까지 오는 6시간의 버스는 새벽 7시부터 타느라 매우 졸려서 버스에서 내릴때마다 maps.me로 위치나 확인할 뿐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Cienfuegos에서 잠깐 10분동안 혼자 냄새 폴폴 나는 피자를 들고 버스를 탑승했다. 이쯤되면 옆사람에게 민폐 甲. 아 그러고보니 그 버스는 의자가 자꾸 젖혀져서 뒷사람이 계속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데, 정작 그건 의자의 이상이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튼 그 뒤로도 몇 번 지나칠 때마다 눈인사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정말 도시를 나가기 마지막 Ancon에서 돌아와서 숙소로 돌아가다가 그 여자분을 다시 만났다. 뭐 나도 도시를 떠나기 2시간 전이니 할 게 딱히 없어 이제서야 대화 시작. (낯가림의 진수다. 이 정도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스위스에서 왔다는 이 분은 산 위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한단다. 나랑은 영어로 대화하고, 모국어는 프랑스어, 독일어 중의 하나일꺼고, 일하면서 스페인어는 옵션이란다. (같이 토산품 매장에 갔었는데 직원에게 스페인어로 물어보던데...) 여튼 2주나 휴가를 내고 혼자 쿠바 여기저기를 구경한다는데,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분이라 그런지 엄청 친절하고 말도 잘 들어주는 덕에 나도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뭐 주제가 한국과 스위스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문제였다는 것은 좀.. 혹시 같이 horse riding을 하러 갈꺼냐길래, 안타깝지만 내가 2시간 뒤에 여길 떠나야되서...라고 말해주고 바이바이했다. 그런데 말타기가 재밌나? 진짜 승마도 아니고 뒤에 따로 탈 거 같은데, 난 그러고보니 진짜 코끼리도 타봤음. ^^
이번 여행은 갈 때 올 때 모두 SF를 거쳤는데, 안타깝게도 갈 때는 사실 예정에 없었는데 의자만 편했을 뿐 비행기가 계류장에서 2시간 서있는 바람에 환승 비행기를 놓쳐서 샌프란시스코 시내 Union Square를 다시 갔다. 그러나 Super Duper 버거 짱 맛있었다. 앞으로 SF에서는 In-n-out 대신 그거 먹어야지. 약간 패티도 두꺼워서 쉐이크 쉑 느낌이다. 가격도 쉐이크 쉑 느낌이라는 건 함정. 크리스마스 장식된 Market Street와 Westfield도 한번쯤 가볼만 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BART 타기의 신이 되어있었다. 마지막에는 트렁크를 끈 채로 원래 들고 있던 표에 추가로 충전하고 개찰구를 통과해서 열차 타는데 2분도 안 걸렸다.
마지막날 귀국 전에는 Peter랑 Jason을 봤다. 사실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는데 15년 가을에 내가 SF를 들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 Peter가 왜 연락을 안 했냐길래 이번에는 연락을 했다. (그리고 연락이 안 와서 Jason한테도 했더니 둘이 같이 봤네? 그것도 크리스마스 직전 금요일인데 ^^) 8년 전의 싱가포르의 인연으로 알게 된 Peter는 몇 년간의 노력을 뒤로 하고 Series A까지 받았던 start-up의 dissolution을 진행중이었고, 시청에서 결혼식도 했단다. 난 신부도 알고 신랑도 아는데 결혼한 것만 몰랐다니. 물론 안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그리고 올해 4월에 결혼한 Jason은 박사 취득 후 구글에서 일하고 있는데 뭔가 내가 관심있었던 IT기업과 스타트업의 뒷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재밌긴 한데 굉장히 technical했다. 사실 둘 중에 한명이라도 23일에 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만나서 나름 기분이 좋았다. 물론 Jason은 신부님까지 같이 나와서 같이 수다를 떨어서 약간 죄송했다만. (뭐 어차피 첫 해라서 그렇게 크리스마스, 연말 앞뒤로 휴가가 나올 줄 몰라서 휴가 계획을 못 세웠었다고 하니 아주 조금 위안은 된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언제나 나에게 주어지던 Standby ticket이 이번에는 오른쪽 창문 자리를 지정해주었다. 비행기 경로 상 이 비행기는 캘리포니아 해안가를 따라 꽤 오랜 시간, 꽤 오랜 거리를 움직이게 되는데 그날따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덕분에 나는 하늘 위에서 캘리포니아 1번 국도를 따라 올라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1번 국도 여행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경로 위에도 구름이 없었다. 사실 위성지도로 한반도를 본적은 많았지만 동해안 바다 끝부터 서해안 바다 끝까지 맨눈으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설록이 함께하는 산능성이, 그 속에 마을, 그리고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서울 롯데타워와 서울로 가까워올수록 눈으로 보이는 엄청난 수의 아파트 단지, 사진기를 트렁크 가방에 넣고 부쳐버린 내가 한심스러울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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