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0109
4주간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나는 원래부터 4급 판정을 받은 상태였기에 신체검사를 받은 상태부터 4주 훈련이 확정되었지만 그 때 난 내가 이렇게 늦게 훈련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회사에 가서 전문연구요원에 편입이 되서도 8월에 나온 영장이 연기되어 12월에 다시 나왔을 때, 난 아 추운데 어떻게 하지 한번 생각하고 일단 말았다. 그러나 날이 다가오면서 추위에 대한 걱정은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다시 연기하려고 했을 때, 난 이미 늦어버렸다. 그래서 정해진 입소일은 2013년 12월 12일. 내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졸업을 하면 그래도 편안하게 내 생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뭐 완전 꽝. 운이 한번 안 좋은 사람은 꾸준하게 좋지 않지만 이번 생일에는 도리어 그 역방향이 커져서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과 혼자 쓸쓸히 보낼 운명이 되었다.
회사에는 애초에 직전 3일을 휴가를 쓴 덕분에 편안하게 입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조금씩 만나던 사람들도 만나고 평일 오전 한적한 시간에 엄청난 준비물과 가방까지 샀는데, 이렇게 준비한 덕에 내가 훈련소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사실 대학원 동기들 빼면 10명이나 제대로 알았으려나 싶다. 여튼 드디어 그 날이 밝았고, 아빠는 굳이 날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빨리 출발할 필요가 없는 걸 뻔히 아는 나한테 아침부터 빨리 출발 안 하냐고 들들 볶아대는 통에 내려가는 내내 짜증을 냈다. 굳이 육군 훈련소 입소대대 앞에서 1시간씩 기다리면서 있을 필요도 없는데, 그 날 하루만 내 기분을 맞춰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싶다. 어쩜 머리도 그냥 논산에서 자르라는 황당한 이야기만 하시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길가다 이용원에서 자르라길래 대전 신성동에 있는 미용실까지 내가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훈련소는 숨가쁘게 휘몰아쳤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방이 없이 훈련소에 휩쓸려갔다. 원래 현역은 입소대대에서 생활을 하고 연병장에서 입소식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냥 어떤 건물에 들어갔다가 간단한 신상조사만 마친 뒤 줄 서서 판초우의를 입고 내가 4주동안 먹고 자게 될 생활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때 원래 같은 생활관으로 가기로 말을 맞추었던 승렬이와도 이별했다. 걷는 길은 멀었다. 책 4권이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1시간이 넘게 무작정 걸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눈비 쏟아지는 상황에서 발을 맞춰서 걸어야하니 암담하다. 그렇게 들어가자마자 소지품검사를 했는데, 난 유리병에 들어있는 로션을 빼고 핸드크림, 미스트, 선크림 샤워볼까지 모주 건졌지만, 왠만한 사람들은 튜브형 제품을 모두 압수당했다. 덕분에 내 핸드크림은 4주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래도 로션은 옆에 있는 친구들 것으로 대신 사용했다.
4주동안 첫 일주일은 일기를 썼는데 이게 일주일이 지나니까 일기가 밀리는 관계로 일기를 쓰는 것을 포기했다. 사실 훈련 초기에는 훈련을 갈 때나 이동할 때마다 팔을 90도까지 끌어올려야하는 큰걸음은 나의 어깨를 힘들게 했고, 밤마다 하늘에서 오는 쓰레기인 눈은 나의 기상을 30분 앞당겨주었다. (그 뒤로는 눈이 간간히 왔다.) 다행히 생활관의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조교들이 우리가 나이가 많은 것을 아는 관계로 우리에게 엄청난 얼차려를 준다거나, 과도한 걸 요구하지는 않았고, 사실 준다고 해도 죄다 불만을 밖으로 표출했다. 밥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괜찮은 편이었으며, 특히 엄청난 오이요리의 공격을 받았지만 오이는 그냥 버리거나 먹지를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먹기 싫은 반찬은 그냥 받지도 않았다.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약간의 청소를 제외하면 개인정비(라고 하고 휴식이라고 읽는 그것)를 하는데, 바깥에서 쓰던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할 필요 없이 우리 분대는 다들 책을 엄청 가져온 터에 편지쓰고 독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아날로그 세상이었지만 이건 24시간 wired된 현대인들에게 꽤 해볼만하고,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할만한 경험이었다. 특히 우리 분대는 열심히 수다를 떨어서 시간이 쑥쑥 흘러가...지만 새벽 6시에 일어나면 하루가 긴 관계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진짜 아직도 오전 11시라는 말이 실감난다. 일요일에는 종교활동을 (빙자한 스트레스 해소 겸 당 섭취를) 위해 법당, 성당, 교회 등을 가는데, 첫 주에 갔던 법당은 파계 수준의 엄청난 문화충격이었다. 일단 법당이 무슨 실내체육관 수준의 규모라서 놀랐었는데, 갑자기 했던 노래자랑도 웃겼고, 소울퀸이라는 가릉빈가 불공시간을 보니 이건 내가 알던 산 속의 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두들 댄스팀에 열광했는데,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전문연구요원들은 뻘쭘하게 앉아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뒤로 성당을 갔는데, 4주동안 성당에만 6일(일요일 3번, 크리스마스, 신정, 영세식)을 갔는데, 마지막에는 성당을 온 건지 훈련소에 온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우리 소대장님이 자율적인 훈련을 강조하시고 일단 훈련병을 믿어주시는 착한 분이라서 들어온지 하루만에 직접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기도 하고, 훈련도 굉장히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PRI 같은 경우, 현역은 엄청 힘들게 하는데 우리는 이 때부터 자기에게 맞는 자세가 중요한 거라며 하다가 힘들면 조금씩 쉬면서 하라고 직접 말씀하실 정도였다. 첫 영외교육이었던 경계 교장에서 공포탄을 쏴도 놀라던 나는 결과적으로 사격 훈련은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영점사격때는 의도치 않은 난사를 해서 종이 이 전체에 총이 맞았고, 실탄 사격때 남들은 20/20발도 맞추는데 난 3/20발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소대장님이 성적을 불러주지도 않으셨다. 실탄 재사격 때 겨우 난이도 하인 100m 거리 사격으로 10/20으로 간신히 통과하며 보충교육을 면했다. 그래도 구급법이나 각개전투는 진짜로 열심히 했다. 구급법은 열심히 하다가 방탄모자를 쓰고 목을 열심히 흔들어서 목에 파스를 붙이고 다닐 정도로 열심히 했고, 기초각개전투 훈련 때는 열심히 진 땅에서 포복을 하며 구르다보니 옷이 굉장히 더러워졌다는 안 좋은 점만 뺀다면 괜찮았다. 물론 1일차에 육군참모총장이 대뜸 훈련소에 방문해주신 덕분에 생활관에서 대기를 한 덕에 좀 더 훈련을 적게 받고 후다닥 평가를 받은 뒤 쉰 덕분이기도 하다.
수류탄이나 화생방 교장은 춥고 고된 가는길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수류탄 교장은 거의 제일 먼 교장인데, 수류탄 교장에서 오전에 제식 훈련을 할 때만 하더라고 괜찮던 날씨가 수류탄 훈련이 끝나갈 무렵부터 눈이 오는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복귀할 때는 우의도 입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이 와서 가면서 눈이 오고 눈사람이 될 무렵 다시 눈이 그쳤다. 그렇게 1시간을 열심히 걸어야했다. 특히 아직도 기억나는 화생방 교장의 추위는 진짜 지금까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추위였다. 핫팩으로 전혀 커버되지 않는 추위 속에서 2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으니, 보호의와 장갑 착용 훈련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입을수록 따뜻해진다.) 다들 온몸 특히 손발이 시린데 왜 굳이 여기에 이렇게 일찍 와서 대기를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두 훈련 다 열심히 내가 참여한 건 아니어서 수류탄은 훈련용 연기나는 수류탄도 던지지 않고, 조교님이 대신 던져주셨고, 화생방 훈련은 마스크를 벗지 않고 가스실을 걸어서 통과했다.
체력단련과 정신교육은 극과 극이었다. 체력단련의 팔굽혀펴기는 어떻게든 해서 39개/2분의 커트라인을 넘겼는데, 윗몸일으키기는 원래 바닥을 찍고 무릎에 팔꿈치를 찍으면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탓에 헥헥대면서 해도 배가 당겨서 49개/2분의 보충교육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고 결국 토요일 오전에 보충교육을 받으면서 사이드스텝을 열심히 밟고 있었다. 체력이 되지 않는 탓에 1차 15km 행군은 단독군장으로 본대에 합류해서 갔지만, 2차 20km 행군은 육군훈련소장과 연대장이 훈련에 참가한 덕분에 단독군장 본대 합류가 좌절되고 결국 차등제로 느릿느릿 영내를 걸어다녔다. 원래 땀이 날 것으로 계획을 하고 내피랑 내복까지 벗고 밖으로 나갔는데, 도리어 느릿느릿 걸음에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대휴식을 위해 생활관으로 들어올 때, 난 열심히 방으로 뛰어들어와서 내복과 방상외피를 걸치고 핫팩까지 붙여서 나갔다. 정신교육은 훈련용 수첩에 있는 답지를 그대로 베끼는 것은 약간 양심에 걸려서 몇개는 틀리게 베꼈는데, 고로 당연히 통과했다. 개인적으로 과연 이걸 채점했는지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4주 훈련은 정말 캠프처럼 시작해서 캠프처럼 끝났다. 제대로 된 입영식도, 퇴소식도 없이 (퇴소식은 추위 때문에 퇴소신고만 하고 1분만에 종료되었다.) 진행된 덕에 난 정말 어느새 들어와서 어느새 나갔다. 그래도 끝났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들어오면서 온갖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센트럴시티에 내려서 폴바셋-몽슈슈-라뒤레 3종세트를 시전하고 지하철역에서 의자를 향해 달려가는 나를 보면서 정말 나오자마자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사회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치즈케익팩토리도 보고, 나만 일하는 신기한 세상에서 수많은 백화점 고객들은 어디서 돈이 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4주간 같이 생활한 12명의 전우(!)들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나이에 4주동안 누군가와 같이 합숙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이고, 앞으로도 비슷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사람들이기에 이런 인연을 쭉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출근할 일이 정말 막막하다. 아 회사 5주만에 나가는데 어떻게 적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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