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日: 총체적 난맥상.
오늘도 나는 일찍 일어났다. 어제 전화했을 때 오늘은 배가 뜰 거라고 했으니까 일단 지푸라기 하나를 믿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후다닥 씻고 부산항으로 갔다. (참고로 그 전날에는 소매물도행 배처럼 쓰시마행 배도 운항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남쪽이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부산이라고 해도 추운 건 매 한가지다. 원래는 지하철 한 정거장이라서 걸어가볼까 했는데, 나오자마자 바람을 맞고 놀라 생각이 바뀌어서 버스를 탔다. (버스로는 두 정거장이다.) 다행히 숙소를 그나마 가까운 부산역으로 잡았으니 망정이지, 해운대 같은 곳에 잡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게다.
나름 한국의 관문이라고 정문은 한옥 기왓장이 올라가있다.
2층 대합실로 오전 6시 40분(!)까지 오라는 문자를 받아서 일단 50분 언저리에 도착했다. 물론 도착해서 상황을 돌아보니 7시에 도착해도 딱히 늦지 않는다. 탑승권은 7시 20분에 돌아오면 다시 나누어 주시는 걸로... 내 생각에는 나처럼 늦는 사람이 있을까봐 일부러 빨리 부른 느낌이다.
참고로 표를 7시 20분에 받으니까, 수속은 저렇게 써있다고 해도 천천히.
그래서 난 해가 뜨는 걸 보겠다며 바깥으로 나갔다. 사실 이 해를 보기 편한 곳을 찾아 주차장에도 올라가보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용케도 여객터미널 5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내서 또 어제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아직 달이 떠있는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데, 해가 떠오르는 바로 그 위치에! 영도가 있어서 정확히 가로막고 있다. 정말 절묘한 위치선정 덕분에 하늘(과 달)만 쳐다보다 들어왔다.
나름 해외에 교통편을 통해 가는 거라서 짐 검사도 정말로 다 하고, 작게나마 면세점도 있다. 물론 이번에는 정말 면세점을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제주도에 갈 때도 구경은 했었는데. 아침부터 구경하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의자에 앉아있었다. 7시 45분에 드디어 입구를 열어주고, 줄을 서기가 귀찮으니 당연히 천천히 밖을 나섰는데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배가 내가 타고갈 쾌속선이다.
자리 간격은 정확히 비행기 이코노미 스타일이다. 뭐 어차피 비행기에서 그렇듯이 타고 2시간동안 잠을 자면 도착한다. 쓰시마섬의 주요 여객터미널은 2개가 있는데, 한국에서 가까운 쪽은 쾌속선으로 1시간 10분, 먼 쪽은 1시간 50분정도 소요된다. 참고로, 먼 쪽이 쓰시마섬의 가장 번화한 곳인 이즈하라(厳原), 가까운 쪽은 그냥 어촌 스타일의 히타카쓰(比田勝)이다.
그렇게 일본국 국기가 펄럭이는 일본땅 쓰시마섬에 도착했습니다. 난 어느새 여권에 점 하나를 찍고 국경을 넘었다. 아싸 해외여행.
일단 잘은 모르지만 항구를 빠져나와 마을로 향해서 가는 데는 성공했다. 뭐 지도 보고 길 따라 가면 되니까.
오 느낌 있는 버드나무. 일단 추우니까 교류센터(TIARA) 1층 의자에 앉아서 Wi-Fi 거지 노릇을 하면서 지도를 쭉 펴놓고는 점심을 먹을 식당과 갈 곳을 쭉 훓어봤는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사실 배가 정말로 뜰 지 알 수 없어서 엔화 환전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환전을 하지 않고 입국을 해버린 나는 읍내(?) 은행의 ATM에 가면 간편하게 엔화를 인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과신하고 있었는데, ATM마다 돈을 뽑지 못하는 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면서 카드를 바꿔가면서 넣어봐도 인출이 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으면서 약간씩 멘붕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1700엔이 필요한데 그건 어떻게 구하지....?) 그러다가 일단 먹고 생각하자고 돌고 돌아 초밥집에 들어갔더니 카드는 안된단다. 일본은 이런 무정하고 무서운 곳이었다니. 그렇게 오다가 한국인들을 보고 지갑 속 원화 엔화 환전을 시도했지만 싫으시다...셔서 또다시 우체국 ATM까지 갔는데, 영어 모드가 있다. 영어모드로 보니 멈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어로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떴는데 이해하지 못하니 당연히 진행 중에 stop되버린 것이었다. (어쩐지 일본인들이라고 해도 뒷사람들은 되는데 나만 안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여튼 도착 2시간만에 엔화를 손에 들고(!) 밥을 먹으러 갔다.
하악 스시다. 스시스시. 난 그렇게 버림받았던 그 가게에 다시 와서 스시를 또 시켰다. 대신 이젠 먹을 수 있지롱. 물론 먹는 데 2시간 걸렸다는 게 함정. 이제 3시간 남았다. 절반이 이렇게 흘러가버리다니. 그래도 멘탈로는 남은 절반을 알차게 보내면 된다고 바투잡고 든든한 배를 이끌고 음식점을 나섰다.
막 일본 만화에서 흔히 나오는 일본 골목의 모습이 뚝뚝 묻어나는 한적한 골목길이다. 그 정점은 박스모양 경차?
그리곤 일단 한국사람들은 다 간다는 유적지부터 찾았다.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비... 라고 하지만 현실은 무너져가는 조선의 마지막은 자그만 대마도 교주의 아들과 조선국의 공주가 동급으로 치부되었다는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비석이다.
두번째는 조선통신사의 비. 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알고 있는 그 조선통신사가 부산을 떠나 처음 방문했던 일본 영토인 대마도에 조선통신사비를.. 국무총리가 방문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한 켠에는 일본이니까. 신사도 있다.
그렇게 열심히 길거리를 쏘다니다보니. 카라가 선전하는 포스터도 보고, (진짜 카라는 일본에서도 유명한건가?)
고양이도 엄청 많이 봤다. 섬인데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많아. 더군다나 헬로 키티도 아닌 길고양이.
그러고는 겨울이라 무료 족욕 시설은 닫았지만 그래도 구경을 해보겠다며 이사리비 공원을 찾아가려고 이즈하라의 골목길을 둘러둘러 갔지만, 결국 구글 지도를 따라 가다가 포기했다. 공원이 높아서 밤에 보면 저 멀리 바다랑 이즈하라 읍내(!)도 잘 보인다는데 뭐 밤도 아니고 낮에도 쓰시마섬은 날 허락해주지 않았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군요. 그래서 30분 넘게 헤매서 등산을 하다가 그냥 다시 교류센터로 돌아왔다. 여기는 Red Cabbage. 쓰시마섬의 유일할 것 같은 규모의 대형마트인데, 가보니까 한국사람들이 와서 엄청나게 일본 과자를 사고 있었다. 나도 그래서 일본의 허니버터칩이라는 시아와세버터칩을 찾아봤지만 사라진 뒤였다. 하긴 이 시간 정도 되면 한국인들이 한참 싹쓸이한 뒤였다.
그래서 TIARA 2층에서 일본 방문 기념으로 먹을 것도 사고(서는 일본 다녀왔다고 이야기하고 다니고)는
이즈하라 우체국에서 어제 열심히 스타벅스에서 썼던 카드를 보냈다. 굳이 일본에서 보내다보니 한국에서는 300원이면 가는 카드가 3배의 요금과 2배의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덕분에 주소를 준 사람들이 대체 그 카드가 오긴 하냐면서 물어보길래 뭐 부산 찍고 오나봐요 라고 말해주었는데, 정말 부산을 찍고 온 느낌이다.
여튼 그래서 나는 빨간 양배추 가게에서 캬라멜 초콜릿 맥주를 사고는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결국 아무것도 이 곳에서 이루지 못하고 쓰시마섬을 뜨기로 했다. 대체 난 여기로 왜 왔을까? 정말 이 곳은 등산과 바다낚시, 그리고 쇼핑(?)을 위한 곳이었다. 그리고 난 터미널 의자에서 아까 내가 찾던 감자칩을 봤다.
설마 나 오늘 여기 배 타러 왔니? 덕분에 추운 곳에서 헤매다보니 배에서는 꿀잠 잤다. 카드 하나 쓰고 정말 꿀잠.
이렇게 부산항에 다시 내리니 이미 밤이다. 부산우체국에서 아까 배에서 쓴 카드를 보내고 얼른 방에 짐을 잠깐 가져다놓고 부산 native 일보직전인 정민이를 만나러 자갈치 시장 근처 광복로에 갔다. 일단 부산 맛집이라는 냉채족발을 저녁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길을 나서니 여기서는 크리스마스 트리축제를 하고 있었다. 와우와우! 서울 신촌에서도 못 본걸 여기서 보는구나.
막 저기 멀리에는 스크린 같은 큰 등도 걸려있고, 공연도 하는....데 공연보다 저 큰 트리가 중요해보인다. 여튼 걸어다니면서 받은 느낌은 널찍널찍한 서울 명동거리를 등으로 꾸며놓은 느낌이다.
그리고 발견한 오색빛깔 루돌프 사슴!! 근데 얘는 아무리 잘 찍어도 본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이 아이가 원래 이런 칙칙한 아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사진 여러장 찍다 포기했다.
그리고는 에스컬레이터를 쓩슝 타고 용두산 공원의 타워에 올라갔다. 부산의 남산타워의 느낌이라는데, 정말 보면 그 느낌이 확 난다. 부산시민이면 입장료를 할인해준다는데 뭐 난 부산에 주소지가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올라갔는데, 우와! 음. 하고 내려왔다. 사실 위에서 보면 남산타워에서 보는 것 같은 뭔가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약간의 교통체증과 저 멀리 보이는 다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 따위는 남산타워에서처럼 없었다. 그래도 저 멀리 BIFC도 보이고, 바쁘게 공사중인 부산신항의 모습도 보였다. 사실 이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환한 바다 야경이라면 여수에서 충분히 많이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튼 길이 훨씬 더 예뻤다. 그냥 길에서 사진 찍고 노는게 훨씬 더 낫다. (그리고 이 뒤에 신촌에도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에 가려고 했지만 잊고 그냥 그렇게 떠나보냈다.)
과연 저 아이는 어떻게 담아야할까 고민하다가 다리가 아프니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엄청 걸어서 스타벅스를 힘들게 찾은 끝에 열심히 밀린 이야기를 했다. 뭐 여튼 그렇게 짧지만 컴팩트한 부산 여행을 마무리했다. 방에 들어가니 밤 11시. 방에는 어제와 달리 사람들이 있고, 난 침대 머리맡의 불을 켜서 수다떨다가 깨진 렌즈를 보면서 잘 체크해보니 렌즈커버만 깨졌다. 돈 굳었다! ㅎㅎ 그렇게 난 여러모로 기분 좋게 취침. 아 이제 내 인생 마지막 내일로 여행이 하루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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